[314th] 계약서

우리 아버지의 이야기를 써봅니다.

아버지는 택시 운전을 하십니다.

한밤 중 2시가 지난 정도 였다고 합니다. 어떤 남자 (40 대 정도)가 병원에서 탔습니다.

행선지는 다른 인근의 병원이었습니다.

옷차림은 깔끔한 블랙 정장 차림으로 이상한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차에 탄 남자는 가방에서 A4 크기의 서류를 꺼내 한장 한장 정성스럽게 보고 있었습니다.

원하는 병원에 도착하자 남자는,

"기사님, 실례지만 조금 기다려 주었으면 합니다. 바로 끝날 일인데다가, 곧바로 다른 병원에도 가지 않으면 안되어서."

라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괜찮습니다."라고 동의했지만, 대신에, 무임 승차를 방지하기 위해 짐을 두고 가달라고 권유했습니다.

남자도 그대로 가방에 있던 봉투만 꺼내고 나머지 짐은 모두 두고 차에서 내렸습니다.

남자가 내린 뒤, 아버지는 평소하지 않는 일이지만, 남자가 보던 서류가 신경이 쓰여서, 호기심으로 보고 말았습니다.

서류는 어떤 계약서 같은 것이 었는데,

이상했던 것은, 이름 옆에 도장이 아닌 지장이 찍혀있던 것입니다.

하지만 차안이 어두웠고 남자가 정말 빨리 돌아왔기 때문에 세세한 부분까지는 볼 수 없었다고 합니다.

남자가 서둘러 병원에서 나오는 것이 보였기 때문에 택시의 문을 열었습니다.

그 때 남자의 뒤에 여자가 따라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아버지는 그 여자에게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꼈습니다.

남자는 "여자는 무시하고 곧바로 차를 출발해주세요" 라고, 의외로 냉정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들은대로... 라기보다는 반사적으로. 즉시 차를 출발시켰고, 백미러도 뭔가 무서워서 확인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 남자는 작은 목소리로 "죄송합니다"라고 한 마디 했을 뿐, 계속 말이 없었으며, 또 다른 병원 앞에서 내리고는 허둥지둥 병원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남자가 내린 후 바로 회사에서 무선이 들어왔습니다.

"시급한 일로 집에서 연락을 달라고 한다, 가족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는 내용이었습니다.

집에 연락하기도 전에 아버지는, 아내 (나의 어머니)가 죽은 것을 그 순간 깨달았다고 합니다.

나의 어머니는 지병인 심장병을 앓아 이미 오래 살 수 없다고 의사가 선고했습니다.

아버지는 이 이야기를 10년 가까이 지나서야 말해주었습니다.

어렸던 나에게 충격을 주지 않도록 배려 해 준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당시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의 충격으로 그 남자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만,

그 남자는 누구인지?

그 서류에 어머니의 이름은 없었던 것일까?

쫓아 온 여자는?

그 "죄송합니다"의 의미는?

아버지는 지금에 와서야 생각난다고 합니다.

나도 어머니의 장례식때의 기억 속에 있는,

어머니의 시신의 엄지손가락이 희미하게 붉었던 것을,

아버지에게는 말씀 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10년 후 쯤에는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