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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괴담

[418th] 딸기 조각 케잌

레무이 2017. 9. 24. 05:42

나에게는 6살 차이의 여동생이 있었다.


나는 초등학교때부터 쭉 체육계라서 건강만 쓸모있는 아이였지만, 여동생은 몸이 약했고 조금 컨디션이 무너지는 정도로 며칠동안 열이나서 드러누워 버릴 정도였다.


그런 것도 있어서 그런지, 서로 싸움도 거의 없었고 정말 사이좋게 즐겁게 지냈다.


상당히 여동생에 약했고, 항상 뭔가를 부탁하면 거절할 수 없이 그것을 들어줘버린다.


예를 들어, 딸기 케익이 간식으로 나오면, 나온 순간부터 동생이 얼굴로 신호를 보내온다.


나도 익숙하기 때문에 그냥 "그래그래······" 라는 느낌으로 들어준다.


그랬더니 동생은 겨우 딸기 한개에 들뜨는 것이다. 저걸 보면 딸기 한두개 따위는 정말로 싼 거라고 생각했다.


정말 그런 아무것도 아닌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지만 현실은 정말 야속한 것이었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그날 아침도 평소와 다름없는 아침일 것이었다.


평소처럼 알람소리에 일어나서 평소처럼 교복으로 갈아입고 평소와 같은 길로 학교에 간다.


그런 아무것도 아닌 날이어야 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부모님의 대화소리가 시끌시끌 들리고 있었다.


아침부터 시끄럽네~ 생각하면서 부모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거실로 갔는데, 거기엔 안면이 창백한 동생이 누워서 신음하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발열과는 분명히 다른 느낌으로 누가 보더라도 알 정도로,


"힘들어······ 뜨거워······"


하는 얼굴이었다.


바로 나도 긴장해서 바로 여동생에게 말을 걸었다.


그랬더니, 사실 힘들텐데도 "언제나처럼 열나는 거니까 괜찮아"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런 리가 절대로 없는데도······.


아버지가 구급차를 불러 바로 병원으로 직행했고, 바로 중환자 실로 이송되었다.


드라마 같은데서 봤던, 중환자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장면.


나도 종종 본 적이 있는데, 그때는 정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싫은 일만 계속해서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정말 생지옥이었다.


그날의 수술은 무사히 끝났지만 설명을 들으니 이제부터 앞으로는 여러 번 수술을 받아야 된다는 모양이다.


물론 동생은 그대로 입원.


언제 퇴원할 수 있다는 말을 듣는 달콤한 상황이 아니었다.


다음 수술의 걱정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동생은 항상 "내가 열이 나서, 항상 모두에게 폐를 끼치고 있으니 나는 나쁜 아이야"라고 말했다.


지금 떠올려보면 아무리 힘들어도 항상 웃으며 "괜찮아"라고 말했구나.


그런 것조차 깨닫지 못했는데 나는 "걱정하지 마,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라고 말했다.


여동생은 계속 웃고 있었다. 부끄러운 이야기다 정말.


나는 어째서 초등학생 아이가 이렇게까지 참아내야 하는거냐고, 정말 몇번이나 생각했다.


나이 값도 못하고 "하나님, 도와주세요"같은 말도 했어.


쓸데없는 일이라는건 알고 있었지만 정말 지푸라기도 잡는 심정이었다.


병문안은 매일 갔는데, 동생은 전신에 튜브를 매달고 있는 모습. 나는 처음으로 그 모습을 봤을 때 정말 무서웠다.


이대로 더이상은 없는게 아닐까······.


하지만 그 녀석의 얼굴을 보면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은 순식간에 날아가버렸다.


그때 나도 정신차려야 한다고 다시 마음을 굳혔다.



학교 동아리도 빠지기로 하고, 친구의 권유도 모두 거절하고 매일같이 학교에서 병원으로 직행.


처음에는 부끄러운 것인지, "매일 오지 않아도 돼."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병원이라는건 역시 따분한 곳이기 때문에 바로 "빨리 와줘!"라고 말하게 되었다.


보통은 엄마가 곁에 있어주셨지만 어쩌다보면 안계시는 날도 있었으니까, 그런 날은 몰래 학교를 빠지고 계속 함께 있었다.


내가 말재주는 없었는데, 열심히 이야기하면 동생도 웃으며 들어주었다.


솔직히 몇번이나 같은 말을 했을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언제나 웃으면서 들어 준거다.


한번은 "너는 말야, 나에게는 아까울 정도로 좋은 동생이야."라고 말했을때, 지금까지 본 적 없었던 좋은 미소로 대답을 돌려주었다.


그땐 정말 기뻤다.


이것은 쓰고 있는 지금도 선명히 기억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두 달 정도가 지난 무렵이었다······.


오랜만에 가족 모두 함께 병원에 갔다.


입원했을 무렵에 비하면 동생은 정말로 말라버려서 손을 대면 부러져 버리지 않을까··· 할 정도로 얇은 팔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침대 위에서 그다지 움직이지 못했고, 언제나 먹기 쉽도록 갈아낸 병원식과 링거 뿐이었다.


일단은 병문안 오면서 딸기 케익을 사왔지만, 그 때는 먹는 것이 금지되어있었다.


눈앞에 있는데도 먹을수 없다는 고생을 시켰으니, 그날 이후로 음식은 가지고 가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그 날은 달랐다.


아버지가 갑자기 "뭔가 먹고 싶은 것은 있니?" 라고 말했다.


나는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여동생은 그런 나는 아랑곳 하지 않고 크게 기뻐했다.


아니나 다를까, 딸기 케익이 먹고 싶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신경써서 비싼걸 사주겠다고 말했다.


그날은 정말 오랜만에 모두가 박장대소 한 날이었다.


병원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조금 신경쓰였던 것을 아버지에게 물었다.


"이제 평범하게 먹어도 되는거야? 그러면 나아진거네!" 라고 기뻐서 큰 소리로 말했다.


그랬더니 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었다. 어쩐지 엄마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이젠 나도 희미하게 눈치챌 수 있었다.


아버지는 말했다.


"의사 선생님 이야기로는 이제 얼마 안남았다고 한다."


그런 정말로 그런 매정한 말에 나는 머릿속이 새하얗게 되었다.


여동생의 몸은 쇠약해져 버렸다.


무엇을 위해 힘든 수술을 한거야.


무엇을 위해 긴 입원 생활을 했던거야.


뭔가 말했지만 기억나지 않는다. 엄마는 옆에서 울고 있었다.


그때 나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다음 병문안 날, 평소 먹던 슈퍼에서가 아니라, 전문점에서 비싼 딸기 케익을 사 갔다.


딸기도 정말로 크고 달아보였다. 그것을 보고는 동생은 들떴다.


딸기 케익을 건네줬는데, 정말로 오랜만에 얼굴로 신호를 보내왔다.


그것이 내심 정말로 기뻤지만 언제나처럼 "그래그래······" 라는 느낌으로 딸기를 건네주려고 했다.


하지만 그건 여동생이 가로 막았다.



"오늘은 오빠가 내 딸기도 먹어" 라고 했다······.



나는 잠시 어안이 벙벙했다. 왜냐하면 오랜만인 케익이면서 비싼 건데.


어째서 그런 말을 하냐고 물었다. 이유를 물어도 "그냥."하면서 고개를 흔들뿐.


나도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뭐라고 해도 굽히지 않아서 순순히 받을 수 밖에 없었다.


그 모습을 보고 동생은 정말 기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함께 먹었다. 딸기 케잌.


그리고 동생이 물었다.


"딸기, 맛있어?" 라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맛있었다.


그때 새삼 생각이 들었다. '음식은 함께 먹는 사람에 따라 맛이 변하구나.' 라고.


어째서 똑같은 딸기인데 동생이 준 것이 더욱 달콤하다고 느껴지다니. 마음 하나로 이렇게까지 달라지는구나, 라는 것에 솔직히 깜짝 놀랐다.


그 후에도 평소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이야기를 하고 웃었다.


그러다가도 아버지가 여동생에게 말하는것이다.


"건강해져서 퇴원하면 어딘가 가고 싶은 곳은 있어?" 라고.


나는, 유원지 같은걸 말하려나 생각했어.


여동생은 조금 생각하고 나서


"집에 가고 싶어요."


"집 식탁에서 모두 함께 엄마가 해준 밥을 먹고싶어요."


라고······.


내가 한 싸구려 생각에 화가 났던 것이 기억난다······.


지금 동생은 그런 당연한 것을 바랄 정도인데.


차마 병실에 있을 수 없어서 화장실에 가서 울었다.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되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과연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집에 갈 때까지 계속 웃는 얼굴이었으니까.



마침내 그날이왔다. 그 때도 아침이었다.


이번에는 알람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고함으로 일어났다. 상태가 급변 한 것 같다.


갈아 입을 틈도 없어서, 잠옷 그대로 차를 타고 병원에 갔다.


동생은 호흡을 거칠게 쉬고 있었다. 멀리서도 보일 정도로 거칠었다.


병원에 갔던 그날보다 괴로워 보이는 얼굴에 잔뜩 땀을 흘리고 있었다.


엄마가 동생의 손을 잡고 있었다. 엄마의 손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만큼 힘이 들어갔다고 생각한다.


여동생은 우리들이 온 것을 눈치채고는, 정말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딸기, 맛있었어?"



라고.


그것은 저번에 여러번 했던 말이었다.


거친 호흡 중인데도 어쩐지 분명하게 들렸다.


나는 고개를 끄덕 수 밖에 없었다.


"다음은 내껄 줄게 또 함께 먹자."


라고 말했더니,


"다음에 먹을 때도 내꺼 줄거야."


라고 대답했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목 놓아 울어버렸다.


딸기 따위 필요없으니까 앞으로도 함께 이야기 해줘.


앞으로도 함께 웃어 줘.


예전처럼 함께 놀러가자.


즐거운 곳 잔뜩 알고있으니까······.


혼자 남겨두지 마······.


나는 정말······ 정말로 그렇게 염원했다.


하지만 그건 절대로 말할 수 없었다. 여동생이 괴로워 할테니까.


"그렇게 말하면, 앞으로도 계속 네 딸기 먹어버릴거야."


웃으면서 그런 농담을 던졌다. 나는 울고 있었는데도.


아마 엄청나게 이상한 표정이었을 거다.


동생은 웃고 있었다.




나는 울면서 웃고, 넌 괴로운데 웃고.


정말 이상한 남매였지, 우리.




그렇게 시달렸는데, 가버릴 때는 정말로 평온했다.


나아버렸냐고 생각될 정도로 명랑한 얼굴. 그냥 자는 걸로 밖에 보이지 않는 얼굴.


그런데 어째서 그 얼굴에 흰 천을 덮는 것일까.


우리 얼굴을 볼수 없게 되잖아······.


다른 이야기를 할 수가 없잖아······.


또다시 울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울었는데도 아직도 눈물은 마르지 않았다.




나는 못난 오빠였다.


그냥 만나러 가서 이야기를 할 뿐.


나는 네게서 많은 소중한 물건을 받았는데, 나는 너에게 뭔가 전해줄 수 있을까?


나의 마음 전해졌을까?


이런 우리들의 나날을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어서, 지금 이렇게 문자로 적고 있다.


그로부터 2년, 나는 공부한 보람이 있게도 무사히 대학에 합격했다.


2년이 지난 지금도 분명히 기억하는 너의 미소.


늦어 버렸지만, 그때 말하지 못했던 그 말을 할게.




딸기, 맛있었어.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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