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번역 괴담

[507th] 소귀신

레무이 2017. 12. 27. 04:32

지금은 오래된 이야기.


이맘때 쯤의 봄. 아직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에, 처음으로 시골에 홀로 여행을 했을 때의 일.



나의 고향은 치바현의 하스누마마을, 쿠쥬쿠리 바닷가의 가운데 쯤이다.


오늘 밤에 도착하는 어머니를 위해 할아버지와 뒷산에 나물을 캐러 가기로했다.


어린이용의 바구니에는 짐승을 쫒는 방울을 할머니가 붙여주셨다.


그것은 "딸랑딸랑"보다는 "띠링"처럼 좋은 소리가 나는 방울이었고 항상 할머니가 소지하는 집 열쇠에 붙여놓던 내 마음에 쏙 드는 것이었다.


봄으로 가득찬 야산은 그 자체로도 반가웠다. 게다가 할아버지는 박식하니까 이번애도 뭔가 잔뜩 가르쳐주실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한껏 들떠있었다.


이윽고, 산나물을 채취하기 시작했고 잠시 지났을 무렵,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있는 곳은 아주 조금만 트여서 길처럼 되어 있었지만, 주변이 온통 나무로 둘러싸여 그 너머를 볼 수 없었다.


뒷산에는 몇 번 갔던 적이 있지만, 이곳에는 와본 기억이 없다.


하지만 괜찮다.


어른을 놓쳤더라도 거기에서 움직이지 않고 즉시 호각을 불면 반드시 누군가 찾아낼 것이다. 그렇게 미리 일러두셨으니까, 나는 목에서 들고있는 호각을 끌어내어 그것을 입에 대었다.




그 때였다.




소를 닮은 크고 검은 것이 갑자기 나타났다.



나와의 거리는 10미터도 되지 않았다.


분명히 투우의 챔피언인 소 조차도 그 녀석 앞에서는 송아지로 보였을 것이다.


먹물같은 몸. 검게 빛나는 두 개의 약간 안쪽으로 구부러진 뿔. 생고기처럼 붉은 색의 눈. 하얀 거품을 물고있는 입.


그 입가에는 투박한 우마의 이빨이 아니라 육식 동물의 날카로운 노란 송곳니가 드러나 있었다.


그 녀석이 노려보고 있는 것은...


바로 나였다.






무섭게도 공격적인 기운, 살기가 나를 향해 겨우 것이다.


움직일 수 없다.


호각은 벌써 손에서 미끄러져 있었다.


녀석이 머리를 세우고 앞발굽으로 땅을 긁었다.


온다!?


머리 속에서 심장이 폭발 할 것 같아서, 무심코 뒤로 물러섰을 때, 방울이 울렸다.


"띠리이이이이·········잉"


그러자 어째서인지 녀석이 바닥을 긁는 것을 그만뒀다.


나는 가능한 살살 짊어지고 있던 바구니를 내려 놓고, 분리한 방울을 다시 울려 보았다.


"띠리이이이이·········잉"


녀석은 지그시 이쪽을 보고있다.


방울소리의 여운이 멈췄을 때 다시 울린다.


"띠리이이이이·········잉"


"띠리이이이이·········잉"


몇 번이고 몇 번 울리는 동안어, 녀석의 공격적인 마음이 진정된 모양이다. 그 증거로 입가의 하얀 거품이 점점 사라져 간다.


나는 필사적이었다. 빨리 이 녀석이 사라져 주었으면, 단지 그것만을 염원하면서 방울을 울리고 있었다.


"띠리이이이이·········잉"


"띠리이이이이·········잉"


얼마나 방울을 울리고 있었을까?


녀석의 눈이 졸려보이게 되었다.


(자버려 자버려 자버려! 사라져 사라져 사라져!)


팔이 뻐근한 것을 넘어, 슬슬 아프기 시작했을 무렵, 드디어 녀석은 눈을 감았다.


(됐다!!)


신기한 것은, 녀석이 인간처럼 꾸벅꾸벅 할 때마다 녀석의 몸이 척척 땅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무릎··· 배··· 목··· 등··· 머리.


어떻게라도 상관없으니까 빨리 사라져!


이미 납처럼 무거운 팔로, 나는 이를 악물고 방울을 계속해서 울렸다.


"띠리이이이이·········잉"


"띠리이이이이·········잉"


드디어 녀석의 뿔이 땅 속으로 빨아들여지듯 사라져 갔다.


하지만 바로 그만두면 또다시 녀석이 나타난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것이 무서워서 방울을 울리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뒤에서 할아버지가 나를 불렀다.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신처럼 보였다.



할아버지가 달려와서 내 손을 움켜 쥐고는 그저 "돌아가자"라고만 말했다.


우리는 한마디도 말을 나누지 않고 돌아왔고, 집 앞의 밭에 있던 할머니도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헤아린 듯, 불안한 표정으로 밭일을 하던 손을 멈췄다.


손만 씻고 할아버지에 이끌려 불간에 갔다. 할머니도 뒤따라 왔다.


"무슨 일이 있었어?"


똑바로 정좌한 할아버지의 앞에서 나는 아까의 사건을 말했다.


할머니는 중간부터 작은 소리로 염불을 외우면서 내 몸을 꼭 껴안았다.


"···할아버지, 그건 뭐였던거야?"


할아버지는 조금 생각하고 대답했다.




"아마도 그건 먼 옛날부터 알려져있던 [소귀신]이라는 괴물이 틀림없구나. 소귀신이란 것은 크나큰 검은 소모습을 한 괴물이고, 그것을 목격한 사람들은 대부분 뿔에 받혀서 죽거나, 산산히 뜯겨진 시체가 되어 높은 나무 위에 걸려있거나, 깊은 골짜기에 나뒹굴고 있었다고 하는구나. 소귀신은 언제 어느 산에 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하는데. 너는 오늘은 살아났지만, 이 다음에는 살아날 수 있을지 모른단다. 그래서 너는 앞으로 바다, 산에 갈 때는 반드시 액막이 부적을 가져가거라. 알겠지?"



···이후 녀석은 만나지 못했다. (물론 보고 싶지도 않지만)


하지만 등뒤에서 할머니의 방울이 울리면, 그 때의 일을 떠올리게 된다.


지금도 녀석은 어느 산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일까.

'번역 괴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509th] 100미터 기록  (0) 2017.12.30
[508th] 새를 키우고 싶어  (0) 2017.12.27
[506th] 환청  (0) 2017.12.24
[505th] 부엌의 인기척  (0) 2017.12.21
[504th] 귀퉁이 방  (0) 2017.12.21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