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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괴담

[625th] 까치밥

레무이 2018. 4. 28. 07:30

여러분은 까치밥(*)이라는 풍습을 아십니까?


(*까치밥: 원문에서는 나무 지키기(木守り))


잘 익은 열매를 모두 따지 않고 일부 남겨두는 풍습은 옛날부터 있어왔는데, 따지 않고 남긴 열매를 까치밥이라고 합니다.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내년에도 역시 많은 열매가 열리기를 기원하는 행위입니다.



이것은 나의 할아버지의 누나가 어린 시절에 겪은 이야기입니다.



할아버지의 집 뒷산에는 큰 감나무가 있습니다.


그 감은 떫은 감이었는데, 매년 곶감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할아버지의 집은 한 줄에 10개씩 감을 매달고 있습니다. 그것을 잔뜩 늘어놓으면 장관이 펼쳐집니다.


말려서 딱 좋은 상태가 될 무렵에는, 원숭이가 와서 훔쳐가는 일도 있다고 합니다.


매년 학교에서 돌아오면, 할머니(할아버지의 할머니)와 누나, 동생과 함께 곶감 만들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해 가을도 뒷산의 감나무는 주렁주렁 열매가 열렸습니다.


할머니는 감기가 악화되어 드러누우시고 할아버지와 누나가 곶감 만들기를 맡았습니다.


감은 아버지가 따다주시면, 껍질을 벗겨 줄에 매다는 일입니다.


할아버지와 누나는 몇 일이나 걸려서 작업했습니다.



이제 다 끝나갈 무렵, 누나는 감의 열매가 모자란 것을 깨달았습니다.


감이 7개 밖에 없습니다. 꼼꼼한 누나는 나무에 조금 남아있던 것을 떠올리고 보러 갔습니다.


딱 3개 남아 있습니다.


누나는 조금 생각 했습니다만, 갯수가 맞아 떨어지기에 따오기로 결정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대나무 막대기를 들고 대나무 끝의 칼에 감의 가지를 끼고 비틀어 쉽게 떨어뜨렸습니다.


3번째의 감을 땄을 때 "갸아아아악-!"하는 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놀랍고 무서웠습니다만, 그건 필시 새소리라고 생각하고는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다음날 아버지로부터 감을 전부 딴 것에 대해 엄하게 꾸중을 들었다고 합니다.



가을도 지나 산의 나뭇잎도 모두 떨어지고, 이제 곧 눈이 내리기 시작할 무렵의 사건입니다.


뒷 밭에 무우를 따러 간 누나는 문득 산의 감나무에 위화감을 느꼈습니다.


감의 열매가 한 개, 나무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전부 땄을텐데 이상하네? 그렇게 생각한 누나는 나무 근처에 보러갔습니다.



가만히 감을 보는데, 갑자기 감이 가면과 같은 하얀 여자의 얼굴로 바뀌었고,


"너의 오른다리가 맛있어 보이는구나."


라고 말하면서, 순간적으로 툭 떨어져 데굴데굴 굴러왔습니다.


새빨간 입을 벌리고 누나의 오른쪽 정강이에 물어 매달렸습니다.


누나는 고통과 두려움으로 정신없이 집으로 뛰어 돌아왔습니다.



집에 들어가 발을 보니 아무것도 없었고, 이상하게 상처도 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머니에게 말해봤지만, 기분 탓이라고 웃으며 무시당했습니다.



다음날 친구 몇 명과 함께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통학로의 중간에있는 벚나무 아래를 지나가고 있는데,


위에서 "갸아아아악-"하는 소리가 들려와서, 확 눈을 돌린 순간 온몸이 움직여지지 않았습니다.


나뭇가지에 감이 두 개 걸려 있었습니다.



감을 본 채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는데, 어제처럼 하나가 하얀 여자의 얼굴로 바뀌며,


"너의 오른다리는 맛있었단다."


그리고 또 하나가 백발의 노파로 바뀌어서,


"나는 왼다리가 먹고싶구나."


라며 둘 다 툭 떨어져서 데굴데굴 굴러왔고,


하얀 여자는 누나의 오른쪽 정강이를, 백발의 할머니는 새빨간 입을 벌리고 누나의 왼쪽 정강이를 물고 매달렸습니다.


아프다고 느낀 순간에 몸이 움직여졌습니다.


왼다리의 할머니도 사라져있었습니다.



주위를 보니 친구들이 멍하니 이쪽을 보고 있습니다.


누나가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냐고 물어봐도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어" 라고,


감이 있었냐고 물어도 "아무 것도 없었는데?"라고 대답했습니다.


그것보다 갑자기 멈춰선 것을 보며 배라도 아픈게 아니냐고 걱정했다고 합니다.



무서워진 누나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 할머니에게 어제 오늘의 일을 울면서 말했습니다.


말한 뒤에도 무서워서 견디기 힘들어서 이불에 들어가 울면서 떨고 있었습니다.



보통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 할머니는 절의 주지 스님에게 상담하러 갔는데 좋은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달리 의지할 곳이 없어 방법이 없었던 할머니는 그날 한숨도 자지 않고 불단 앞에서 조상님께,


"어떻게든 아이를 도와주세요."


라고 거듭 부탁을했다고합니다.



할머니가 기도한 밤, 누나는 꿈을 꾸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새하얀 옷을 입은 남자가 나타나 누나의 앞에 정좌하고 조용히 인사를 한 후 이렇게 말했습니다.


"힘이 미치지 않아서 정말로 미안하다. 전부 용서받을 수 없었다."


그리고 또다시 조용히 인사 한 후, 천천히 떠올라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습니다.



다음날 잠에서 깬 뒤, 할머니에게 이야기를 하자 누나를 안고 울면서,


"미안하구나, 미안해, 아무것도 해주지 못해서 미안하구나."


누나와 함께 눈물을 펑펑 쏟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무엇을 하든 누나에게 할머니가 동행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어제를 마지막으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한 달이 지나도, 두 달이 지나도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기에, 점점 할머니와도 떨어져서 이전의 생활로 돌아왔습니다.



3년 째의 여름, 할머니는 폐렴에 걸려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가을에 감이 익어갈 무렵, 누나는 밭일 중에 오른발이 못에 찔려버렸고, 그 상처가 곪아 오른 다리의 무릎 아래를 절단했습니다.


다만, 그 이후는 무병장수하여 사고없이 평화롭게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누나는 2007년 8월, 83세로 운명했습니다.


집에서 자면서 자연스럽게 숨을 거뒀기 때문에 천수를 다 했다고 생각합니다.


누나와 할머니의 기일이 하루 차이인 것은 우연일 것입니다.




누나의 생전의 말버릇은,


"나는 욕심을 부리는 바람에 오른다리를 잃었단다.


선조와 할머니의 힘이 없었다면 살아 있지 않을지도 몰라.


너희들도 만족할 줄 알고 겸손하게 살거라."


나의 할아버지는 물론, 누나의 아이들도 여러번 들었던 말입니다.



나도 마음에 새기고, 소중히 지켜나가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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