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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괴담

[805th] 검지 손가락

레무이 2018. 12. 10. 09:04

잠들지 못했던 어느날 밤의 사건입니다.




무더위와 직장 일로 지쳐 있던 나는, 평소보다 상당히 빠른 9시경에 아이들과 함께 취침하기로 했습니다.


피곤했기에 빨리 잠들 수 있었지만, 일찍 잠든데다가 더위 탓인지, 한밤 중에 깨어나 버렸습니다.


아직은 눈을 감은 채 였지만, 문득 깨달은 것은 가볍게 쥔 내 왼쪽 손바닥에 뭔가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누군가의 검지손가락 같았습니다.



같은 침대에 누워있는 아이는 내 오른쪽에 잠들어 있었을 것입니다. 항상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


게다가, 그것은 아이의 손가락이라기엔 너무 컸습니다.


움찔했지만, 감히 눈을 뜨고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나도 무슨 까닭인지는 모르겠지만 반사적으로 꽉, 그 손가락을 잡고 말았습니다.


확실히 인간의 손가락이었습니다.


이상하게도 두려움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그 손가락은 어디선가 만져본 적이 있는 것 같았고, 그리움마저 느껴졌습니다.


아내라거나 부모님 같은··· 어쨌든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데, 왼손에 쥐어진 손가락의 감촉이 슥-하고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바로 옆에 사람이 앉아있다는 기척같은, 압박감을 느꼈습니다.


그 압박감은 점점 무게로 바뀌고, 온몸에서 식은 땀이 흘러 나왔습니다.


이런 일은 처음 경험했습니다.


역시 무서움이 생겼고, 알고있는 경문을 몇번이나 머리속으로 외었습니다.


잠시 후 그 기색도 갑자기 슥하고 사라져버렸습니다.


안심한 뒤, 천천히 눈을 뜨고 주위를 확인했지만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조용한 숨소리를 내고 있었고, 역시나 오른쪽에 잠들어 있었습니다.



잠시 누워 지금의 사건을 돌이켜 보았습니다.


그때 문득 돌아가신 할머니의 기억이 되살아났습니다.


나에게 할머니는 어머니를 대신해 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할머니가 노쇠와 병원에서 감염된 병으로 남은 삶이 얼마 없었을 때의 일입니다.


일주일에 몇 번이나 병문안을 가곤 했지만, 항상 그저 자고 계셨던 할머니가 그날에는 눈을 희미하게 약간 뜨고 있었는데,


나를 향해 천천히 손을 내밀었습니다.


마치 도움을 요청하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어떤 두려움 같은 것을 느껴서, 약하게 내민 그 손을 잡아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는 돌아가셨고, 나는 그날의 일을 약간은 후회했습니다.



감상적으로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어쩌면, 아까 잡았던 손가락은 할머니의 것이었을지도··· 생각하니 눈물이 나와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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