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칠대로 지쳐 마지막 기력을 쥐어 짜내어 자전거를 달리던 나는 집까지 얼마 남지 않은 곳까지 온 상태였다. 모든 것이 끝났다는 안도감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무력감으로 힘이 빠질 것만 같은 다리를 질타해가며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양 쪽에 집이 늘어선 주택가였지만 가로등의 수가 부족한 건지 밤에 지나가면 조금 초조해지곤 하는 부근이었다.그 어두운 밤길 저 너머로 녹색 빛이 보인다.공중전화 부스다. 어렸을 적의 경험 때문에 귀신 전화라고 부르고 있는 그 부스.지금, 그 전화부스에서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듯한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DiLiLiLiLiLiLi……DiLiLiLiLiLiLi……하고, 숨을 쉬는 듯.그걸 알아차렸을 때 한 순간 가슴이 두근하고 울렸지만 금세 그 정체를 짐작해낸다.또..
어둡다. 어두운 기분. 진흙탕 밑바닥에 가라앉는 듯한 감각. 나는 이상하게 어두운 방 안에 홀로 있었다. 어질러진 벽가에 가만히 앉아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 마침내 바깥에서 발 소리가 들려와 나는 움직이기 시작한다. 현관에 서서, 문에 귀를 대고 숨을 죽인다. 어두운 기분. 죽여버리고 싶은 기분. 발소리가 밑쪽에서 올라오고 있다. 나는 그게 엄마의 발소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마침내 그 소리가 문 앞에서 멈춘다. 똑똑똑 문을 두들기는 진동. 발돋움을 하고 체인을 벗긴다. 그리고 잠금장치를 찰카닥 연다. 손에는 단단한 것. 내 손에 딱 맞는 조그마한 날붙이. 문이 열리고, 슬그머니 창백한 얼굴이 들여다본다. 엄마의 얼굴. 본 적이 없는 표정. 보고 싶지 않은 표정. 문 너머, 엄마의 등 너머로 달이 보인..
그 날 방과 후에 나는 3학년 교실로 향했다.폴터가이스트 현상의 책을 빌려준 선배를 만나기 위해서다. 선배의 반은 복도에서 이름을 대고 물어보자 금방 알 수 있었다.선배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오, 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어주더니만, 자리에 가니 금세 양 손을 얼굴 앞에 맞대고 사과했다.「미안, 지금 동아리에 가야 해.」 검도는 그만두신 거 아니냐고 물어보니 「문화계~」라며 트럼펫을 부는 시늉을 한다. 취주악부나 뭐 그런 데에 들어간 모양이다.「딱 하나만 가르쳐주세요.」 나에게 「뭐, 일단 앉아봐.」라며 가까운 자리에서 의자를 끌어온다. 주위에서는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 학생들이 나를 신기한 듯이 힐끗힐끗 보고 있다.조금은 시간을 내 줄 것 같았기에 순서대로 물어보기로 했다.「선배님네 집에서..
도서관에서 돌아오는 길에 나는 크레이프를 먹으면서 상점가 길에서 방황하고 있었다.석양이 벽돌로 포장된 길을 물들여 이런저런 모양의 그림자가 보인다. 길 가는 사람들의 옆 모습은 왠지 모르게 안절부절 못하는 것만 같았다. 모두 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감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여자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내 앞을 스쳐지나간다.숨을 내쉬고는 마지막 한 입을 갉아 먹는다. 그 어떤 사람의 표정도 내 마음을 투영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로르샤하테스트다. 웃는 얼굴을 제외하고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 따위 원체 없으니까.결국 그 도서관에서 책이 낙하한 원인은 알 수 없었다. 이런 일들이 어제, 즉 수요일부터 오늘까지 마을의 구석구석에서 일어나고 있..
무서운 꿈을 꾸고 있었던 듯하다.아침 햇살이 이상하게 더 성가시게 느껴진다.천장을 올려다보며 양 손을 머리 위로 뻗어 기지개를 켠다. 자기 자신이 기분 나쁜 땀을 흘리고 있었다는 것을 눈치챈다.이불을 걷어 차내고 몸을 일으킨다.꿈의 잔재가 아직도 머릿 속에 남아 있다. 현실의 눈은 감겨 있었는데도 시각 정보로서 기억에 새겨진 꿈 속의 광경. 지금까지는 신기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는데도 이상하게 오늘은 무척이나 기묘한 것처럼 느껴졌다. 꿈 속의 나는 이상하게 어두운 방 안에 혼자 있었다. 흐트러진 벽에, 가만히 앉아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 마침내 바깥에서 발소리가 들려와 나는 움직이기 시작한다. 현관에 서서, 문에 귀를 대고 숨을 죽인다. 발 소리가 아래서부터 올라온다. 나는 그 발소리가 엄마라는 것을 알..
무서운 꿈을 꾸고 있었던 듯하다.아침 햇살이 이상하게 더 성가시게 느껴진다.천장을 올려다보며 양 손을 머리 위로 뻗어 기지개를 켠다. 자기 자신이 기분 나쁜 땀을 흘리고 있었다는 것을 눈치챈다.이불을 걷어 차내고 몸을 일으킨다.꿈의 잔재가 아직도 머릿 속에 남아 있다. 현실의 눈은 감겨 있었는데도 시각 정보로서 기억에 새겨진 꿈 속의 광경. 지금까지는 신기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는데도 이상하게 오늘은 무척이나 기묘한 것처럼 느껴졌다. 꿈 속의 나는 이상하게 어두운 방 안에 혼자 있었다. 흐트러진 벽에, 가만히 앉아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 마침내 바깥에서 발소리가 들려와 나는 움직이기 시작한다. 현관에 서서, 문에 귀를 대고 숨을 죽인다. 발 소리가 아래서부터 올라온다. 나는 그 발소리가 엄마라는 것을 알..
쿄스케씨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무서운 꿈을 꾼 것 같은 느낌이 든다.어렴풋이 눈을 떴다가 하얀 침대시트가 눈부셔 다시 눈을 감는다. 새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숨을 토하고 나서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다. 고요한 아침이다.어떤 꿈이었는지 생각하면서 기억을 더듬어보려 한다.그러자 ‘참새는 영혼을 볼 수 있다’는 이야기가 문득 머리에 떠올랐다.어느 나라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로, 참새는 태어나기 전인 인간의 영혼을 볼 수 있다고 한다.아침에 참새가 우는것은 바로 그 태어날 인간의 영혼에게 반응하는 것이라고.그 영혼이 들어가야 할 장소가 텅 비어있으면 영혼을 갖지 못한 아이가 태어난다.그런 아이가 태어나는 아침엔 참새는 울지 않는다.그러니까 참새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아침은 불길함의 상징이다.커텐을 열자 2층의..
대학 2학년 봄 즈음, 오컬트길의 스승인 선배 집에 훌쩍 놀러 갔다.문을 열자 좁은 방 한가운데에서, 무언가 고심하는 듯한 얼굴을 하고 사진을 보고 있다. “무슨 사진이에요?” “심령 사진” 조금 질려버렸다.심령사진이 그렇게 무서운 건 아니었지만, 문제는 양이다.다다미 바닥 가득히 앨범이 흩어져 있는데, 수백장은 있는 듯했다.어디서 이렇게 많이! 하고 묻자, “업자” 하고 사진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하는 것이다.아무래도 오사카에 그런 가게가 있는 듯하다.절이나 신사에 맡겨지는 심령사진은, 물론 제령お払い(*역주: 액막음, 한국 무속에서 말하면 굿)을해달라고 의뢰하는 것이지만, 대개 처분도 같이 해달라고 부탁한다.거기서 태워지지 않고 흘러나온 물건이, 매니아의 시장에 나온다고 한다.믿어지지 않는 세계다..
깜짝할 사이에 지나쳐가 보이지 않게 된 그녀를, 그 잔상을 째려보며 나는 마음 속으로 날뛰는 감정을 억누르고 있었다.그 날의 1교시는 영어 수업이었다.칠판의 영어를 노트에 옮겨적고 있는 내 책상에, 둥글게 뭉친 종이가 툭 떨어져 왔다. 펼치자『야, 치히로. 덕분에 케익 두개나 먹어버렸다. 뚱뚱보 되면 어쩔거냐 `皿´ 』라는 문장이 쓰여있었다.노트 가장자리를 찢어『미안. 미안한 김에 점심시간에 잠깐 어디 좀 같이 가줘』라고 써서 돌려보냈다.대답은『OK』아무 일도 없이 시간은 흘러, 드디어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웅성거림이 교실에 퍼지는 한편 나는 일어나 타카노 시호의 자리로 향한다.‘잠깐 나좀 보자’그 순간, 긴장한 듯한 공기가 주위에 흘렀다.나는 신경쓰지 않고 마치 어디에 묶이기라도 한듯 몸을 굳..
물어낼 수 있었던 건 거기까지였다.고맙다는 말을 하고 교실 앞에서 떠나왔다.그녀는 아마 이제부터 점심을 같이 먹는 친구들과 내 얘기를 하고 있겠지.뭔가, 기분나쁘지. 점술같은거 하는 사람 말이야.이시카와씨도 점술만 하고 있던 중학교 시절의 나를 뒤에서 손가락질 하던 한사람이었을 것이다.가슴 속에 소용돌이치는 분노와 가시에 찔린듯한 미미한 아픔이 내 마음을 흔들어서 온전한 정신으로 있을 수 없었다.나는 교실로 돌아가지 않고, 점심을 먹지 않은 채 교사 뒤의 비밀장소에서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결국 몇줄 읽고서 버린 그 러브레터는 교내에서 봤다는 내 용모에 대해서만 줄줄 늘어놓고 있었다.보낸 사람도 이런 내 본성을 알면 편지를 보내지 않았을까. 담배꽁초가 몇개피고 발치에 떨어져도, 아무도 오지 않았다.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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